제주에서 곡 작업하면 더 좋지 않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뭐 딱히 부정은 못하겠다. 그래도 그 압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건 바깥 풍경과 아주 이질적이라 때론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 온 이 시간. 난 혼자 베이스 기타를 녹음 중이다. 영화 마감은 얼마 안 남았고 나의 부족함은 나를 너무 괴롭힌다. 힘들고 외로운 직업. 가만히만 있으면 하루에 15시간은 말을 할 필요가 별로 없다. 제주에서도.
이상한 나라에 갔었다. 이상한거 알지만 난 그래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는 결국 없어지더라. 이상했으니까. 나도 바뀐 세상에 적응이 힘들었고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나라를 다시 가고 싶어서 힘들었고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안가려고 포기 했다. 근데 다시 가고 싶다. 아마 난 죽는 날 까지 그 나라를 그리워 할 것 같다.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중용. 어릴때 학교에서 저 말을 배울때 실제 감이 없었는데 이제는 잘 알지. 업 할때 근자감,버릇없음 조심 다운 할때 낙담,좌절금지. 남의 일인듯 나를 객관적으로 자제시켜야 한다. 지금 난 다운인가 싶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저마다 성찰하며 셀프로 알아들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vibe가 있나보다. 잘 풀리고 난 잘 할거야. Up / Down은 과정일뿐 결과가 아니더라. 서울 출근 위해 제주공항가는 새벽 버스 안에서 졸기 전 일기.
서울행 비행기는 6시것을 탄 적이 있으나 제주행 비행기 7시는 처음이다. 공항가는 9호선 급행은 오전 6시10분이 넘어야 다니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RG가 없고 6개월여가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른데 녀석이 좋아지는건 느린거로 믿고..있다. 녀석…어제 6개월만에 고향 병원으로 이송되었겠구나. RG 없는 그간 난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만큼 일을 많이 쳐냈다. 혼자 하기 정말 버거울 만큼 많은 작업들. 그만큼 RG 빈자리 였던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자주 있었으나 이젠 내 스스로 내 건강이 걱정이 되고 있다. 난 하느님이 이런 시간을 왜 RG 에게 주셨는지 원망스럽고 나 역시 이런 힘든 일정을 소화하는게 왜 일어 났는지 기도 할 때마다 알고 싶다고 말한다. 이 일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그리고 그 ..
내 일을 한 지 20년은 되었다 그냥 소소하게 누가 알아주지도 않던 나를, 내 일을 내 스튜디오를 찾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이제 껏 버티고 살아남았다. 전문가 소릴 들어도 사실 맞지 않나? 하고 스스로 생각도 하다가 이 세상에 넘쳐나는 고수들에게 아직도 한 수 두 수 배우며 나는 그냥 겸손하게 살아야지 하고 자주 생각하곤 한다. 좀 한다고 까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가 후회가 된다. 인생은 커가는게 아니고 커지려고 ‘노력’하는건데 커진만큼 돌아보면 주변엔 커있던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곤 놀란다. 그래도 내 노력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난 지금 현재 도광양회 중이라고 마음 속으로 말해본다. 인생은 외로운 길. 그 길을 그냥 앞만 보고 간다. 그 소리는 아마도 ‘터벅터벅’ 일거다.
좋아하는 건 마음이나 생각보다 어쩔수 없이 몸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고 숨기기 어렵다. 어른이 되면 생각이 몸을 지배하는게 익숙해져 대략 숨길 순 있지만 혼지 만의 시간 혼자 만의 공긴에선 부지불식 그게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걸 만약 스무살에 찾는다면 대 천재거나 부모님의 이끔이 그 원인일 수 있다. 서른살 혹은 더 늦은 마흔 살에도 하고 싶은 일은 찾기가 어렵다. 근데 찾았다면 그게 참 축하 할 일임에도 본인들이 용기를 선뜻 내지 못하고 본인이 본인을 숨긴다. 철없다고 스스로를 여기면서. 심지어 돈을 잘 벌고 있는 사람은 찾아도 그건 못본착 하고 싶을 것이다. 노인이 되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나이를 먹은게 더 힘들었다 한 어느..
주변 사람들에게 난 외향적인 사람이냐 내성적인 사람이냐 물었다. 모두 날 그 두가지로 카테고라이징 하긴 어렵다고 했다. 사실 누구나 두개의 측면이 다 있겠지. 내성적인 사람에 더 가깝다고 했다. 날 외향적인 사람으로 아는 사람은 나와 안 친한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처음부터였을까? 변한거겠지. 나도 무념무상의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 ..
방금 명동서 미사를 드리고 성북동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러 나왔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서울에 다시 적응(?)하는 것 같다. 적응인지 아니면 생활패턴의 변화인지 그게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좀 헷갈리지만 여튼 생활 패턴을 찾은 듯 하다. 잘 잃어버리고 그만 잊어버리고 .. 그러자 이젠. 놓자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