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살 던 해 중에 올해 처럼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해가 있었던가? 죽는 날 까지 앞으로는 절대 없겠고. 사람이 되길 노력하고 사는데 올해는 더 노력해보자 그런 다짐하며 옆에는 브라질산 커피 콩을 볶으며 이 글을 쓴다. 혹시라도 가끔 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올해 건강도 하시고 웃을 수 있는 일이 한달에 한번 씩은 생기길 기도합니다. 제가 알기론 사는 게 그게 다 더군요.
논란이 되고 될 만한 일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또한 누구나 각자의 처지 혹은 위치에서 생각을 할테니 그 차이도 있을것이고. 나도 그렇고. 여튼 누구나 발언기회 , 소명할 자리를 줘보고 그 얘기도 들어보고 난 후 가치판단을 해야지. 그 자릴 주는 날짜를 한참 미루고 지금 인격살인을 해대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고 어떤 ‘기시감’ 마저 든다. 특히 정의감에 사로잡힌 아군들이라 여겼던 사람들. 다 자기 처지에서 나온 가치관. 알겠고. 일단 좀 닥치자.
어려선 외식이 좋았고 지금은 집밥이 좋고. 뭐 먹나 생각하는 점심은 늘 그게 그거고. 가끔 해먹는 집밥은 오랜만에 하니 재료가 썩어 있거나 사먹는거 보다 비싸. 이렇게 천정보고 누워 생각하니 밥을 먹어서 그래도 난 행운이다 생각되어지고 그러다보니 투정도 사치네. 고맙습니다.
낯선 이 많을때 거기서 밝은 모습으로 있어야 할 때. 불편하다. 좀 나아진건 ‘나만 그런거 아니야’ 란 생각이 들었을때 였다. 그러고 나니 거기 다들 그러고 계신 양반들이 딱해보이기 시작하고 가끔 표정들을 살피다 보면 웃기기도 하다. 고로 비지니스란건 뻘쭘을 이겨내는거. 혹독할때엔 자존심을 반쯤만큼이라도 접어두는 거.
발신자정보없음. 나는 올해로 대학 강의 한지 14년 되었다.글쎄 돌이켜 보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었고 전임은 되지 못했지만 지금도 겸임으로 내 맡은 바 할 도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몸도 지치고 해서 그만 두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가지 이유로 그만 못 두고 지금의 대학에선 인연을 맺고 가고 있다. 작년 2학기에 난 80명의 학생들을 두고 영화음악에 관한 강의를 했고 그 중 외국인 학생들이 꽤 있었다. 그 중 중국인 학생들이 7명인가...그 쯤 있었다.그 친구들은 3년을 한국에 있었다기엔 대체 이 한국어 실력은 뭐지? 할 정도의 수준이 었다. 아무리 점수를 주려고 해도 그 중 한명은 어쩔수 없이 F를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친구가 ... 내 인스타그램에 욕설을 남기기 시작한 건 이번 학기가 시..
종강이라 후련한 마음으로 학교를 갔다 새벽 5시40분 천둥과 함께 폭우가 내리고 난 그냥 우산을 들고 택시를 타고 가야지 했고 큰 길로 나가다 마침 운좋게도 사당가는 버스탑승. 택시비 절약하고 비는 얼마 안 맞고. 좋네. 근데 운은 거기까지. 그 후 ... 3분 차이로 못 타서 다음 버스인 비싼 프리미엄 고속버스도 타보고 그후 그 버스는 교통사고 났고. 터미널에 도착을 못했으니 결국 택시는 결국 10여분 걸어가 세종시 청사 앞에서 탔고. 겨우 탄 택시에선 어느 약 장수 같은 목사의 협박형 설교가 ... 이 날 더 있는데 그만.그래도 하루종일 왜 이럴까 그 분의 뜻은 뭘까 생각했던 날. 교훈 : 일상의 설레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