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야 하는데 오전에는 면접이 있다. 이 쪽에 마음 내려 놓은지가 좀 되었는데 막상 최종까지 가니 이게 '기대'란 건지. 반대로 후에 실망 할 까 걱정하는 '노파심'인건지 나의 기분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비행기도 타러 가야하는데 옷을 좀 편하게 입고 내려가야 일도 잘 될 텐데 덕분에 내일은 좀 단정하게 (?) 기대건 노파심이건 나는 나였으면 하는데 아직 자연인 '나' 가 아닌 듯하다. 아직도 나는 수양부족.
술이 좀 취했고 집까지 걷다가 찍은 귀가 길. 난 앞으로 어떻게 살까?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이 길 6년차인데 술에 취해서 힘들긴 했는데 마음이 가벼웠다. 부모님 생각하면 마음이 깜깜한 터널 같다. 그렇지만 그래도... 난 비겁한건지 ...아니다 .. 조심성이 많아 나를 신뢰하지 않는거 같다. 꿈을 향해 힘차게..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숨 좀 크게 쉬고 어려움을 참아 보자.
그제 대면 강의를 했다. 그것도 늦은 개강후 9주차 만이다. 온라인 강의 만들기 힘들었었다. 혼자 떠드는 기분 참 별로였다. 근데 어제는 연락이 와서 다시 비대면을 한다 했다가 다시 대면이 되었다. 오전과 오후가 틀리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실. 다음 주는 어떻게 될까? 우힌 분명 코로나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게 무섭고 슬프다.
어머니는 일흔이 넘으셔서 미싱앞에서 뭔가 하시는걸 좋아하신다. 뭐라도 하셔서 참 좋고 다행이다. 어머니는 내 가방을 만들어 주셨다. 안입는 청바지로.. 박음질이 좀 약하고 마감이 덜 된거 같아도 난 이 겨울을 이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닌다. 난 아마 죽는 날까지 이 가방 들 것 같다.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어머니 .. 사랑해요 어머니. Ps: 어머니 세례명이 tag이 되어 어머니가 만든 모든 것에 붙어져 있다.
언론 그것의 일부분인 기자 언론과 그 기자들을 또 다시 보게 된다. 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본 줄 알았다. 너무들 한다. 나의 부모님은 신문의 큰 글자만 읽으신다. 듣고 싶은 소릴 해주는 TV 뉴스만 보신다. 이미 장관 지정자는 이미 내 부모님에겐 사람도 아니다. 예전엔 부모님에게 사실을 설명 해드리려 했지만 나쁜 놈들은 현혹질을 일삼는 그들이다. 부디. 임명되어 그의 한 걸음이 역사 속에 큰 의미가 있는 걸음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