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자로 산지 20여년. 어려서 이 일을 막 시작할때 암 것도 몰랐고 그저 일이 오기만 바랬고 일이 오면 정말 죽을 힘을 다해서 했었어. 때로 옆에 사람이 앉아서 내게 지시 중이었는데 난 그 말을 듣으며 작업 중에 내 고개를 떨구고 잠든 적도 있었지. 집에 못간 날도 사나흘씩 되었긴 일수였어. 지금까지도 그 수면부족은 날 힘들게 해. 왜였을까. 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친한 선배도 잘 아는 지인도 아무도 손을 내주지 않더라. 속으로 운 적도 많았지. 서러워서. 가브리엘이 있어서 넘길 수 있었던 시간들. 어제 모 회사 미팅 후 나오며. 나와 나이가 같은 대표를 보며 문득 사업가로 사는 그의 옆 모습을 봤어. 작업자로 산 나. 사업가로 산 그. 난 비지니스가 뭔지 몰라. 골프도 재미없고 술도 많이 ..
지난 20년간 난 내 옷을 산 적이 없다. 그니까 내가 지금 입는 옷들은 20년이 넘었거나 누가 선물한 것이다. 어버이날. 어머니 모시고 여의도에 좀 비싼 식당에 갔다. 고기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렸다. 그렇게 해드릴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근데 그 다음 다음날. 어머닌 내게 남방 3 벌과 티 한장 여름 자켓을 사서 보내신다. 식사하시다 보신 20년 된 내 아주 낡은 코드로이 자켓과 구멍 뚫린 티셔츠를 보시고 사셨다고 한다. 홀애비가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면서 비싼 식당에 자길 데려 간게 맘이 아프셨단다. 의도치 않았는데 일이 그렇게 되버렸다. 난 내 관심사는 옷이 아니라 음악하고 내 스튜디오의 일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둘 뿐이라. 유행이 지났는지 옷이 낡았는지도 내 눈엔 멀쩡하게 보여서 구별이 안되었나 보다..
이상한 나라에 갔었다. 이상한거 알지만 난 그래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는 결국 없어지더라. 이상했으니까. 나도 바뀐 세상에 적응이 힘들었고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나라를 다시 가고 싶어서 힘들었고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안가려고 포기 했다. 근데 다시 가고 싶다. 아마 난 죽는 날 까지 그 나라를 그리워 할 것 같다.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내가 잘 가고 있나? 처음 계획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매 달 혹은 매 분기별 작은 유무형의 성과나마 있나? RG가 없고 이 계획은 분명 더 어려워졌다. 원래 내 규모에서는 어렵던 일일까? 아님 그냥 RG의 부재만 원인일까? 음악만 한다면 굳이 내가 가려던 길을 갈 필요 없잖아 아니 그래도 나에겐 믹싱이 없으면 오늘이 없었고 포스트에 관한 욕심이 여전히 붙어 있다. 돈은 없고. 꿈은 있고. 무모한거 알지만 난 그렇게 살아왔어서 그런지 그래야 감흥이 생긴다. 공항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AM 06:05 처음생각과 지금생각을 되짚는 생각의 Round trip.
중용. 어릴때 학교에서 저 말을 배울때 실제 감이 없었는데 이제는 잘 알지. 업 할때 근자감,버릇없음 조심 다운 할때 낙담,좌절금지. 남의 일인듯 나를 객관적으로 자제시켜야 한다. 지금 난 다운인가 싶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저마다 성찰하며 셀프로 알아들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vibe가 있나보다. 잘 풀리고 난 잘 할거야. Up / Down은 과정일뿐 결과가 아니더라. 서울 출근 위해 제주공항가는 새벽 버스 안에서 졸기 전 일기.